Scandinavia2008. 11. 30. 15:14


가져갈 물건들을 잔뜩 늘어놓았다가 출발 직전에야 허겁지겁 짐을 꾸리는데 45리터 배낭+힙쌕에 아무리 우겨 넣어도 다 안들어간다. 클났다. 옷을 좀 빼고, 카메라는 못 넣고 본체만 어깨에 메고 나섰다.

내가 타고 갈 KLM의 747-400이가 연착되어 막 도킹하려는 중이다. 인천-암스테르담 경유-헬싱키로 가는 스케쥴이다.




암스테르담 상공


살도 찌고 몸도 많이 노쇠-_-하여 11시간이 넘는 3등칸 비행을 어찌 견디나 걱정했는데, 웬걸, 앉아있는 데에 이력이 나서인지 전에 탈 때보다 편하다. MP3P에 음악을 잔뜩 넣어놓고 비몽사몽간에 듣다가.. 지겨울 때쯤 되면 밥도 주고 간식도 주고.. 바깥 구경도 좀 하고.. 화장실 한 번 간 것 빼고는 꼼짝 않고 앉아서 왔다(돌아올 때는 레벨업을 해서 한번도 안 일어나는 기록을 세웠다).

옆사람하고 끝까지 말 한 마디 안하는 기록도 세웠다 -_- 아 뻘쭘해라.. (돌아올 때는 한 마디 했다. "어? 벌써 도착했네요?")

바깥 지형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서해와 중국을 지나 고비사막에 들어서자 본격적으로 아래가 다 내려다보인다. 어느샌가 시베리아 삼림이 펼쳐진다. 두어 시간을 날아가도록 끝없는 짙은 녹색 숲 가운데 길 하나가 달랑 뚫려 있다(철도인가?). 무섭도록 넓다. 지형이 울퉁불퉁 험해지며 우랄 산맥을 넘자 드디어 사람 사는 데가 보인다 ㅠㅠ. 세계지리 책에서 봤던, 삼포식 경작지 가운데 아담한 마을이 있는 풍경이 드문드문 나오기 시작한다. 발트해를 건너자 갑자기 도시들이 나타나고, 동유럽과 확연히 차이나게 경지정리와 관개시설이 완비된 경작지가 보인다. 사진은 암스테르담 착륙 직전.





스키폴 공항(암스테르담)은 북유럽의 항공 허브다. 대단히 붐비지만 시설은 오래 되었고, 환승하느라 걸어서 터미널 이동하는 시간이 상상을 초월한다. 인천에서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는 데 문제 없었던 작고 예쁘고 비싼 에비앙 생수를 못 가져가게 한다. 다 마시거나 버리란다. 뷁! 결국 버렸다.

밤 10시쯤 되어서 헬싱키행 뱅기에 탔다. 한국인은 보이지 않고, 여기저기서 처음 들어보는 동유럽 언어 비슷한 말소리가 들리니(사실 핀란드어임) 이제야 좀 멀리 왔구나 싶다. 근데 왜 옆에는 중국 아저씨가 타서 맨발에 샌달 신고 비행 시간 내내 다리를 떠는거냐 -_-

헬싱키 공항에 도착해 공항버스를 타고 중앙역까지 오니 자정이 넘었다. 숙소에 가야 하는데 한밤중이라 지도를 봐도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다. 터렛에 끼인 SCV처럼 왔다갔다 하고 있으니 신나게 떠들며 지나가던 대학생 무리 중 한 아가씨가 도와주겠단다. 찾는 곳을 보여줬더니 갑자기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하고는 직접 데려다주겠단다. 아아 친절도 하셔라.. (이후로 여행 기간 내내 지도를 들고 10초만 머뭇거리면 누군가 먼저 도와줬다 ;;)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며 10분쯤 걸었더니 바로 숙소에 도착.





원래 숙소를 잡고 갈 생각도 없었고, 무조건 호스텔로 가려 했는데, 항공권을 급히 구하다 보니 여행사에서 자기네를 통해 호텔 4박을 예약하는 조건으로 괜찮은 항공권을 줘서 헬싱키의 첫 2박과 마지막 코펜하겐의 2박은 호텔에서 묵게 되었다. 도착시간이 12시였는데 호텔 예약해 두지 않았으면 고생좀 할 뻔했다.

내 여행 다니면서 묵어본 중 제일 좋은 호텔이었다. 저 큰 트윈룸에 들어서니, 지금 혼자 있다는 게 처음으로 와 닿았다.
사진은 다음날 아침에.
Posted by Tukk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