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andinavia2008. 12. 2. 00:57


(사진을 클릭하면 원래 크기로, 선명하게 보입니다)


장거리 비행과 시차의 피로가 누적된데다 적응이 좀 되자 긴장이 풀어져서, 전날은 기절하다시피 잠들었다. 9시 경 늦으막히 일어나 부랴부랴 아침을 먹고(호텔만 좋은 게 아니라 조식 뷔페도 먹어본 중 최고로 푸짐했다 ;ㅅ; ), 이것저것 기록하고 정리하고 계획 짜고 하다 보니 어느새 체크아웃 시간이 되어 간다(으응?). 부랴부랴 짐을 챙겨 나왔다.




 
호텔 문을 나서는데 자동으로 눈이 Lock on & Zoom in된다. 끼아(현지인 발음)의 자존심(Pride) 차가 있었다. 사실 도착 첫 날부터 한국 차는 100미터 밖에서도 알아보고 따로 콜렉숀을 만들었다(곧 별도로 포스팅).

짐을 다 들고 호텔 문을 나서자, 처음으로 갈 곳도 머물 곳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 던져졌다는 사실이 비로소 실감이 나면서 설렘과 흥분과 약간의 막연함이 교차한다. 가이드북의 숙소 정보를 뒤적이다가 요금이 싸고 무선 인터넷이 된다는 호스텔을 골라 그 쪽으로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어제 갔던 중심가와는 반대 방향으로 한 40분쯤 걸었던가.. 좀 헤매다 -역시나 지나가던 사람이 먼저 도와줘서- 찾게 된 이 곳은 올림픽 스타티움인데, 그 내부를 호스텔로 개조하여 쓰고 있었다. 저 벽면에 보이는 아파트같은 곳 일부가 숙소다(아마 선수촌 숙소같은게 아니었나 싶은데...).

부푼 꿈을 안고(?) 찾아간 리셉션에서는 그러나, "예약 했어요?" / "아뇨.." / "방 꽉찼어요" / "눼.." 이렇게 되었다. 호텔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여기 오니 여행자들 정말 많다.

짐도 무겁고, 어디 갈 지 생각하는 것도 귀찮아서, 호스텔 앞마당 벤치에 앉아 한참동안 싸이질-_-을 하며 인터넷을 무단도용하다가(사진 백업용으로 손바닥만한 UMPC를 갖고 갔었다), 중앙역에 인포메이션 센터가 있었던 게 생각나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가기 시작했다.






시가지 한복판에도 공원이 있었지만, 중심가를 약간만 벗어나도 온통 이렇다. 한 블럭이 주택가라면 두 블럭이 공원지역이다. 평일 대낮인데도 한가로이 산책하거나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제와 달리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는 눈을 못 뜰 정도로 맑고 투명한 햇살이 온몸으로 쏟아지지만, 코 끝을 스치는 바람에는 북쪽 나라의 서늘함이 묻어 있다.

좋구만!!






큰길가로 나오니 건너편에 이런 호수가 있고, 주변엔 역시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그런데 어제부터 왜 자꾸 사진이 수평이 안 맞는 거냐? 성격이 비뚤어지다 보니 그런건가..

저 건너편이 중심가인데, 더이상 무거운 배낭을 메고 걷기가 힘들어서 처음으로 트램을 잡아 탔다. 48시간동안 모든 교통수단과 박물관 등을 무료 이용할 수 있는 '헬싱키 카드'라는 걸 비싼 돈 주고 사놓고, 처음으로 쓰는 순간이었다.






중앙역 안에 있는 여행안내센터에 갔다. 시내 숙소 정보를 가지고 있고, 약간의 수수료를 받고 예약 대행까지 해준다. 호스텔이 모두 꽉 찼다는 점만 빼면 아주 훌륭하다.

뒤에 다른 도시에서도 되풀이되는 일이었지만, 도시 규모가 작기 때문에 성수기에는 비싼 호텔까지도 꽉꽉 들어찬다. 아무리 무계획이 계획이라 해도 숙소만은 예약을 해놓고 다니자. 일정이 유동적이라면 놋북과 휴대전화를 이용해 그때그때 다음 일정을 예약/취소하며 다니는 게 좋겠다. 듣자 하니 여행자가 일시적으로 쓸 수 있는 휴대전화 서비스도 있는 듯하다.

숙소가 없다는 말에 난감해 하고 있으니, 6시에 다시 오면 예약 취소된 곳이 있을 수도 있단다. 오호라, 어떻게든 되겠지. 일단 짐을 코인 락커에 넣고(이제 좀 살겠다 ㅠㅠ), 이미 4시가 다 되어 가니 그냥 주변 상가 구경을 다녔다(사진). 내 취향 옷을 많았다만 몸매도 돈도 받쳐주지 않으니 구경만.






어제 그 형님들이시다. 몸 좋으시네요.

사실, 카메라를 아예 안 들고 갈까 생각도 했었다. 사진에 신경 쓰느라 내 눈이 보고 내 온몸이 느끼는 걸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카메라를 가져가겠다고 생각을 하면 자꾸 욕심이 생겨서 렌즈니 삼각대니 더 갖고 가고 싶어지고... 결국 집을 나서는 순간에야 본체만 달랑 들고 나서기로 결정했다.

사진 찍는 원칙을 세웠다. '찍을 것'을 찾지 말고, '그럴싸한 결과물'을 남기겠다 생각하지 말고, 다만 찍어야겠다는 느낌이나 인상을 받을 때만 찍자고. 당연한 얘기일수도 있겠다만, 여하튼 주객이 전도되지 않게 하고 싶었다. 초반 며칠간은 나름 이런 원칙에 충실하여, 특히 오늘은 구체적으로 내가 했던 일들을 기록한 사진이 별로 없다. 상대적으로 글은 길어지고.







신용카드 전화는 비싸서 공중전화카드 파는 곳을 찾아다녔는데 못 찾고, 해외전화나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가게가 있다길래 찾아가는 길에 뒷골목에서 휸다이 꾸뻬(투스카니) 발견.

전화를 쓰고, 다시 역전으로 와 대형 마트에서 저녁거리를 좀 샀다. 제일 싼 걸로만 골랐는데도 한 끼에 만 원은 든다.

인포메이션 센터에 다시 갔더니 자리가 난 호스텔이 있단다. 그럼 그렇지, 노숙할 운수는 아니구나! >_<
예약비 5유로에 예약을 해놓고, 무거운 배낭을 락커에서 꺼내 들쳐메고 호스텔을 찾아 걷는다. 어깨 빠진다 ㅠㅠ (이후로 3일간 근육통에 시달렸는데, 적응이 되었는지 나중에는 오래 메고 다녀도 괜찮았다.)

가는 길에 지도를 보고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역시나 웬 백발의 아주머니가 도와주겠단다. 직접 안내를 받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아예 짐을 내려놓고 서서 한참 얘기를 했는데, 시간 되는 날 자기 차로 근교 구경을 시켜주겠단다!! 갑작스런 호의에 당황스럽긴 했지만, 일정을 생각해보고 연락을 해주기로 했다. (결국 헬싱키 체류 일정을 하루 더 늘리기로 하고 저녁에 전화해서 이틀 후로 약속을 잡았다.)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도착한 SATAKUNTATALO라는 호스텔. 2박에 34유로. 야전병원을 연상시킨다?
혹시나 해서 가져간 소형 침낭을 요긴하게 썼다. (남들은 침대보와 베개커버에 이불까지 갖고다녔다. 물론 안 가져가도 돈 내고 빌릴 수 있다.)

나는 45리터 여행배낭을 썼는데, 사진의 내 옆자리와 같이 유럽인들은 주로 저런 길쭉한 등산배낭을 메고 다닌다. 60리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데, 수납 양은 물론이고 무게배분이나 이동시 걸리적거리는 정도에서 등산배낭이 월등한 것 같다.

호스텔에서 만난 여행자들은 다들 친절했다. 먼저 인사하고, 웃어주고..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엘리베이터다. 바깥 문을 당겨 열고, 쫄쫄이 문을 옆으로 민 다음 탄다.
보기보단 안전하고 잘 작동한다 ㅋㅋ 문을 꽉 닫지 않으면 출발하지도 않는다.




아까 산 저녁거리를 들고 근처 광장에 나왔다. 이 건물이 뭘까? 무려 고속터미널!!
터미널 시설은 지하에 되어 있고 윗부분은 다세대 주택인데, 너무나 깔끔하고 예뻤다.
우리로 치면 반포 고속터미널과 주공아파트인데..음..




윗 사진은 터미널 측면이었고, 여기는 앞쪽 출입구와 광장이다. 쇼핑센터 내지 복합문화공간 건물로 보인다.
오른쪽에 SOKOS HOTEL이란 곳이 처음에 머물던 호텔이다. 어쩐지 호텔에서 내려다보니 지하통로로 버스가 쉴새없이 드나들더라니. 그러나 매연과 소음은 전혀 없었다(서울에서 사는 곳이 고속터미널과 가깝다 보니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가곡을 부르는 노신사 음악가도 있고..







구석에 있는 계단형 벤치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아까 사둔 저녁을 먹었다.
2.9 유로짜리 즉석 연어크레페!

노르웨이에 가면 연어를 실컷 먹어주리라 했건만,
정작 연어(로 만든 즉석요리)는 핀란드에서만 두 번 먹었다.





오늘의 맥주타임.

어제는 갈매기와 함께, 오늘은 로컬 양아치들 젊은이들과 함께(사진에는 안 나옴).






당시 최첨단 러닝화였던 A사의 메가바운스. 뛰어난 충격흡수력과 통통 튀는 반동으로, 무거운 짐을 메고 오랫동안 걸어다녀도 다리와 허리의 부담을 최소화 해주었다. 다만 발을 감싸는 부분이 비교적 얇은 메쉬 소재라서, 농구화를 신었을 때와 달리 초반에 큰 물집이 잡혀 살짝 고생을 했다. 그래도 가볍고 통기성도 좋아 도보 여행 용으로 아주 만족스러웠다. 고마워서 한 컷.






터미널 내부다. 차는 완전히 지하로만 다니고, 탑승구는 거의 공항 수준이다.
콜리 녀석.. 슬쩍 찍었는데도 알아채버렸..






다시 호스텔. 사우나가 있다기에 해보려고 했었는데 너무 늦게 들어왔더니 이용시간이 끝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가이드북에 나오는 데는 하나도 안 갔다.
그냥 걷고 또 걷고.. 벤치에 앉아서 놀고...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좋은데!
혼자 돌아다닐 때에만 느낄 수 있는 무한의 여유와 자유, 그리고 反효율성의 쾌감.


Posted by Tukkin